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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동쪽 땅끝 호미곶이 여기던가?? === | |
낙동정맥 백운산에서 동쪽 땅끝 호미곶을 향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그 명맥을 이어가던 형남기맥 산줄기타기도 오늘로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그리 긴 여정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형산강의 남쪽 수계를 형성하는 산줄기 이어가기는 고단한 발품이었지만 우리지역의 젖줄인 형산강수계를 면면히 이어가는 산줄기는 우리네 삶 가까이 내려앉아 민초들의 애환을 보듬으며 함께 숨쉬기도 하며 때론 저만치 혼자 솟구쳐 동쪽 바다를 향해 숨가쁘게 내쳐 달린다. 형산강 남쪽줄기 종주라는 알량한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곁가지 타기는 막바지에 이르러 그 고단한 발품을 위로라도 하듯 시원하게 쏟아붓는 장대비의 환영을 뒤로 하고 호미곶등대에서 그 여정을 마무리한다. 내가... 아니, 우리가 그러했듯 누군가가 또 이 산줄기의 끝을 향해 발자국을 포갤 것이다. 오늘 산행은 희날재에서부터 줄곧 산간도로를 따라 180봉 직전까지 약 12km 가량은 차도를 따르게 되고 마지막 180봉을 지나 고금산까지는 묵은 임도와 수목 우거진 짙은 수림을 헤치고 나가야 하고 마지막 산봉이 되는 고금산 일대에서는 지뢰매설지대로 인해 마루금을 빗겨 내려서야 하므로 다소 아쉬움이 남게 되지만 상생의 손이 있는 호미곶 해맞이광장 바닷가에서 비릿한 바다바람에 그 동안 땀에 절은 옷가지와 행장을 내려놓고 두 손, 두 발을 바닷가에 담그는 순간만큼은 진한 감동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금오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동산공원묘원 뒤로 포항시가지와 포항항만이 깨끗하게 펼쳐진다. 오늘은 참가인원이 적은 관계로 15인승 봉고에 몸을 싣고 희날재에 도착한다. 09시 15분, 희날재 육교에서 기념촬영 후 곧장 육교를 넘어 동산공원묘원을 알리는 팻말을 따라 북쪽 시멘트길로 올라선다. 금오산까지는 묘원도로를 따르는 길이 마루금이다. 그리 청명한 날씨는 아니지만 엊그제까지 비가 내렸던 관계로 시야는 깨끗한 편이다. 월성손씨묘지 입구를 지나(09:29) 197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자 동산묘원 관리사무소다.(09:43) 왼편(동쪽) 건너로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금오산이 지척으로 건너다 보인다. 도로차단기가 설치된 지점을 지나 임도를 버리고 묘지를 가로질러 내려서자 곧 도로에서 금오산 올라서는 능선초입이 된다.(09:46) 임도에서 벗어나 금오산을 향한다. 금오산까지는 풀밭과 잡목지대를 헤쳐 올라야 한다. 키만큼 자란 억새풀과 딸기넝쿨을 헤치고 올라선 금오산(金鰲山,230.4m)은 잡초무성한 평지에 산불초소만이 우뚝하게 솟아있다.(삼각점 불국사425) (09:49~10:03) 산불초소에 올라서면 포항시가지를 비롯한 철강공단, 영일만에 점점이 떠 하역을 기다리는 화물선이며 대동배까지 아주 가까이로 보인다. 또한 희끄무레 솟아오른 토함삼~함월산 줄기까지 아스라히 펼쳐진다. 저 먼 길을 부단히 걸어왔던 내 자신이 한편으론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이득히 먼 과거처럼 그저 가물가물 할 뿐이다. 금오산에선 초소 아래 풀밭지대를 가로질러 나선다. 몇 발자국 후 무덤 1기를 만나고 곧이어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높이 2m 정도의 날씬한 돌탑을 만난다. 어느 간절한 손길이 이 후미진 산등성이에 이토록 정성스러운 염원을 쌓아 올렸는지 자못 궁금하다. 돌탑 아래로는 급사면의 벼랑으로 이루어져 더 이상의 진행이 곤란하고 돌탑 10m 직전에서 왼편으로 희미하게 난 족적을 찾아 들어야 한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길은 그런대로 뚜렷한 윤곽을 이으며 5분만에 다시 산허리를 도는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10:12) 임도와 만나기 직전으로 소나무 조림지대가 짧게 이어지고 <98조림사업(보조조림)구역>을 알리는 하얀 말뚝을 지나면 곧 임도다. 이제부터는 줄창 도로를 따라 북으로 바다를 건너다 보며 동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이 길은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쬘 경우 고통스러운 길이겠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린 관계로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다행이고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단지 바라는 건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지만 그 모든 것을 원한다면 너무 과분한 욕심일까? ▼금오산을 지나게 되면 곧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돌탑에서 권순태님-길은 돌탑 직전 왼편으로 나 있다. 길은 비포장과 시멘트 포장으로 두어 번 바뀌더니 왼편으로 211.6봉을 지나 용환으로 향하는 샛길능선 하나를 지나더니(10:30) 5분 만에 거무골갈림길을 만난다.(10:34) 우측 비포장 길은 거무골을 타고 동해면으로 내려서는 길이고 기맥은 왼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나서야 한다. 사면을 깍아낸 193봉을 왼편으로 휘어도는 바위 절개지를 따라 5분 가량만 더 나서면 또 한번의 삼거리를 만난다.(10:38) 이번에는 우측(북동)으로 진행한다. 정면(북쪽)으로 난 길은 용환으로 갈라지는 길이고 우측길을 따르게 되면 왼편 건너로 용환리 바닷가의 방파재까지 건너다 보인다. 윷판재가 가까워지면 정면으로 봉긋이 솟아오른 212.1봉을 향해 진행하게 된다. 212.1봉 직전에서 도로 왼편 212.1봉 올라서는 능선초입을 만난다.(10:55) 초입은 대체적으로 선명한 편이고 분홍띠지까지 걸려있다. 발품을 아끼자는 얇팍한 속셈으로 212.1봉을 우회하여 계속되는 도로를 따르기로 한다. 우측 골짜기 아래로 눌태지를 바라보며 산허리 두어 개를 돌아 나가는 길은 기맥에서 점점 멀어지는가 하더니 10분 만에 윷판재에 당도한다.(11:05~18) 윷판재는 시멘트도로에서 왼편으로 10m 정도 떨어진 산능선 잘록이로 고갯마루엔 옛 성황당터였던 듯 돌무더기의 흔적이 있고 고개 건너로 흥곶리(興串里) 진골마을로 내려서는 옛길이 수풀 속에 묻혀있고 공개산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능선길도 보인다. 윷판재에서 곧장 공개산으로 붙으면 길이 없다는 선답자(최중교, 강인중님)의 충고를 되세기며 계속되는 시멘트 길을 따라 나선다. 5~6분 가량 산허리 시멘트 길을 따라 나서자 윷판재에서 갈라졌던 능선과 합류하는 지점이 되고 도로 왼편으로 풀 숲에 덮인 무덤2기가 올려다 보인다.(11:24) 이 지점이 공개산으로 향하는 마루금이 되고 계속되는 도로를 따르게 되면 공개산을 우회하게 된다. 무덤 뒤로 난 희미한 길을 헤쳐 짧은 암반지대를 따라 올라서자 온통 잡목 숲이다. 제대로 된 길이라고 볼 수 없는 희미하고 가파른 사면을 올라서자 무덤 1기를 지나치게 되고(11:29) 이어서 잡목 우거진 완만한 능선상에 올라선다. 올라선 능선에서 왼편(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참나무 숲 풀밭을 헤쳐나가자 쓰러진 나무깃대와 삼각점이 있는 공개산(孔開山, 213.8m)이다.(11:35~39) 정상부 주위로는 참나무를 베어냈지만 여전히 수목으로 인해 조망은 없는 편이다. 간단한 기념촬영만 하고 온 길을 되짚어 나선다. 이 일대로는 잡초가 얼마나 우거졌는지 방금 지나온 길이건만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제대로 된 길이 없다. 남동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수림을 헤쳐 나가자 겨우 희미한 족적을 찾을 수 있었고 20여분 능선길을 헤집고 내려서자 공개산을 우회했던 도로와 다시 만나고 20m 후 도로가 "Y" 자형으로 갈라지는 208봉 직전 삼거리 길이다.(12:00~07) 여기서 좌측 비포장길은 208봉을 우회하는 길이고 우측 시멘트 오름길은 208봉 직전에서 산허리를 돌아 다시 비포장 길과 합류하게 된다. 208봉을 오르기 위해 우측 시멘트길을 따라 5분 가량 올라서면 시멘트길이 비포장으로 바뀌는 능선마루에서 왼편 산허리를 타는 숲길을 만나게 되고(12:11) 이 숲길은 208봉 정수리를 직접 거치지 않고 산허리를 타고 나서다가 다시 도로로 내려서게 된다. 이어서 우측으로 채석장을 향하는 임도 갈림길이고 초입은 쇠사슬 줄로 가로막혀 있다.(12:16) 계속되는 정면 차도를 따르게 되면 우측 아래로 산 하나를 통채로 갉아먹은 흉물스런 채석장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는 곳을 지나 10분 정도만 더 나서게 되면 차단기가 있는 4거리 갈림길이다. 일행은 차단기가 나타나기 직전 바다가 보이는 곳에 퍼져 앉아 점심식사를 갖는다.(12:25~53) 잔돌이 깔려있는 산간도로 한 가운데를 점령하고 바다를 내려다 보며 갖는 점심식사도 그런대로 새로운 경험이다. 차단기 4거리(12:55)에서는 왼편 북서쪽 방향으로 진행한다. 도로변으로 나란히 서 있는 전봇대를 따라 나서는 길이다. 후덥지근, 끈적끈적하던 산길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핥아낸다. 다들 오랫만에 만나는 바람에 마냥 좋아했지만 이병목 부회장님께선 잠시 후에 비가 내릴 것을 예견하시며 "이 바람은 비를 몰고오는 바람" 이라며 30분 내에 비가 올 것이라고 장담하신다. 아닌게 아니라 정면으로 산불초소가 보이는 능선을 왼편으로 우회하는 도로를 따르는 길에서(13:06) 갑자기 숲이 컴컴해지는가 하더니 먹장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이내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병목 부회장님의 천기를 보는 세월의 연륜에 감탄할 뿐이다. 폭우는 거친 기세를 몰아 부치더니 이내 도로는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 내린다. 후덥지근하던 날씨 속에서 한바탕 폭우가 쏟아지니 사방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한차례 그 비를 즐겨본다. 13시 28분, 차단기가 있던 4거리 갈림길을 지나 30분 만에 정면으로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는 또다른 4거리 갈림길을 만나다. 포항시 산림조합의 수해복구 현수막과 태풍피해 임도복구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기맥은 차단막이 있는 정면 공사도로로 진행해야 하고 저 앞으로 송신탑을 보면서 나서게 된다. 이 일대로는 왜 이렇게 갈래갈래 흩어지는 임도가 많이 개설되어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가없다. 며칠 전 이 일대 답사시 동산공원묘원에서 만난 공사인부의 말에 의하면 이 도로는 구룡포, 상정, 대보, 강사등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아무튼 구지 이렇게 임도를 개설해야 했던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임도4거리를 지나 5~6분 가량 북동으로 향하는 길을 따르게 되면 아주 중요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13:34) 직진하는 도로에서 왼편으로 갈리지는 갈림길 3거리를 만나게 되는데 왼편으로 90도 이상 꺽어들며 약간 올라서는 길이 고금산을 향하는 길이다. 초입 5~6m 정도는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고 그 이후로는 묵은 임도가 된다. 여기서 계속 직진하는 길은 대보면 강사쪽으로 연결된다고 하니 이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꺽어드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80.6봉-삼각점만이 고스락을 지킬뿐 사방으로 숲에 가려 조망은 터지지 않는다. 북서로 향하는 왼편길로 접어들어 100여m 묵은 임도를 따라 올라서면 정면으로 180.6봉을 향하는 능선마루가 시작되고 임도는 180.6봉을 왼편으로 우회하여 나서게 된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을 따르게 되면 희미한 오솔길로 이어지고 불과 3분이면 정상부 주위로 소나무를 잘라놓은 180.6봉이다.(13:45~48) 180.6봉은 훼손경고문이 붙은 삼각점(대보 301)이 있고 주위로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조망은 없는 편이다. 180.6봉에서는 직진방향인 북서쪽으로 내려선다. 길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의 소나무 숲이고 허리를 바짝 수그려 잔솔까지를 헤치고 잠시 내려서면 무덤 1기를 만나게 되고(13:52) 무덤 왼편으로 난 희미한 족적을 따라 20m 가량 내려서자 180.6봉 직전에서 산허리를 휘어돌던 묵은 임도길과 다시 합류한다.(13:53) 임도에서 우측(북서)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자 이내 180.6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길과 합류하게 되고 임도는 수풀이 웃자라 그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인 듯하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며 비가 그치자 사방으로 스멀스멀 손에 잡힐 듯이 안개가 피어올라 숲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어떤 자연의 그림이 이토록 신비스러움을 뿜어낼 수 있을까? 마치 열대우림지역의 밀림을 헤치고 나가는 듯한 착각이다. 키 큰 고사목이 줄지어 있는 지역을 통과하고(14:03) 이어서 5분 후 용도를 알 수 없는 쓰러져 가는 목조울타리가 있는 인위적 시설물도 지나친다. 넓직한 임도가 차츰 그 형태를 잃고 소롯길로 변하는가 싶더니 고랑처럼 움푹 패여 산허리 하나를 넘어설 즈음 우측으로 지능선 하나가 흘러 내리고 있다.(14:15) 정면 뚜렷한 오솔길은 마치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 같이 여겨져 일행은 여기서 우측 능선의 길없는 길을 헤쳐 나가느라 20여분 가량을 허비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우측으로 향하는 능선 초입부는 그런대로 길 흔적이 있는 듯했지만 갈수록 족적이 희미해지더니 끝내 왼편으로 대보저수지를 보고서야 도돌이표를 찍어야 했다. 다시 기맥능선까지 돌아와(14:40) 수로처럼 패인 길을 따라 1분 가량 더 나서자 방금 헛발품을 판 지형과 똑 같은 형태의 길을 만나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갈라지는 지능선으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14:41~50) 역시 배수로 홈통같은 길을 따라 1분 가량 더 나서자 다시 한번 우측으로 분기하는 능선이 있고 좋은 길은 능선 왼쪽으로 향하며 계곡으로 내려서는 듯 깊숙이 떨어지게 된다. 이 세 번째 분기하는 능선이 바로 고금산을 향하는 마루금이 된다. 앞선 일행은 산허리를 질러가는 좋은 길을 따르고 본인은 능선으로 접어든다. 하지만 능선으로 향하던 길은 무덤 1기를 만나면서 더 이상의 길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아래 잘록이 안부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잘록이까지는 불과 50m 정도의 거리지만 울창한 수목을 비집고 내려가기가 여간 까탈스러운게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처음 능선이 분기되던 오솔길까지 되짚어 간 후 능선 왼쪽으로 1분 가량 내려서서 봉화산이 코 앞으로 보일즈음 우측(동쪽)으로 난 희미한 오름길을 따라 5분 가량 올라서게 되면 주능선 마루금과 접하는 안부에 이르게 된다.(15:10) 결국 이 능선을 찾아내기 위해 지독하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잡목과 씨름하며 세 번씩이나 헛발품을 파느라 50분 정도를 소비하고 만 꼴이다. 다시한번 정리하면 180.6봉을 지나 묵은 임도를 따라 30여분 진행하다가 임도가 오솔길 수준으로 변하고 고랑처럼 패인 지점에서 우측으로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을 1분 간격으로 세 군데 지나치게 되는데 세 번째 능선이 기맥마루금이 되고 능선을 따르면 무덤1기를 만나며 길 흔적이 없어지지만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서 만나게 되는 잘록이가 올바른 마루금이 되는 셈이다. 안부를 지나 북동방면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르게 되면 안개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대보저수지가 우측 아래로 내려다 뵌다. 길은 어느 사이 다시 오솔길 수준으로 변하고 넓은 무덤1기를 지나(15:24) 정북으로 진행하자 오솔길은 난데없는 시멘트길로 변해 잠시 이어지게 된다.(15:26) 5분 정도 나서게 되면 무덤2기가 있는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여기선 왼쪽이 고금산을 향하는 길이다.(15:34) 여기서 오른쪽 무덤들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면 바로 건너로 고금산 정상부의 군사시설물과 호미곶 풍력발전기가 있는 해맞이광장이 한 눈에 내려다 뵌다. 형남기맥의 끝자락이 바로 발 아래라 생각하니 그저 감회가 새로울 뿐이다. 무덤2기를 처음 만났던 지점까지 되돌아와 왼편으로 접어들어 5분 가량만 더 진행하면 우측 계곡으로 향하는 내림길을 지나 이내 고금산 직전으로 <지뢰지대경고문>이 서 있고 접근금지를 알리는 차단막이 더 이상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15:41~47) 차단막을 지나 좀더 나서보지만 역시 철조망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다. 결국 형남기맥의 마지막 산봉인 고금산일대는 군사시설물 지역으로 직접 밟을 수 없는 마루금이 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금산 지뢰경고문에선 왔던 길을 되짚어 계곡으로 향하는 갈림길까지 되돌아가서 계곡길로 내려서거나, 경고문 앞에서 우측 사면을 타고 내려선 후 사면으로 난 희미한 족적을 따르게 되면 지뢰지대 외각을 둘러쌓고 있는 철조망 개구멍으로 빠져 나오게 되고 계곡길과 합류하게 된다.(16:00) 곧이어 농장을 지나게 되면(16:05) 저 앞으로 녹색의 논밭 너머로 호미곶등대와 풍차가 보인다.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풍차를 향해 20분 가량만 발품을 더 팔면 해맞이광장 끝자락의 바닷가에 이른다.(16:24) 어느 사이엔가 비는 그쳐있고 푸른하늘엔 언제 그랫냐는 듯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 형남기맥 마지막 발걸음을 격려라도 해 주는 듯하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풍기는 호미곶 바닷가에 두 손을 담그며 그동안의 고단했던 마루금잇기를 마무리한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형남기맥 발품을 마무리하며... 선남선녀들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는 호미곶은 원래 "말갈기처럼 생겼다" 해서 조선시대에는 장기곶으로 불렸으나 1918년 일제가 곶(串)을 일본식 표현인 갑(岬)으로 고쳐 장기갑으로 했으나 1995년 일제잔재 청산차원에서 정부가 장기곶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선중기 풍수학자인 남사고(南師古)는 "동해산수비록" 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 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이 코, 이곳은 꼬리에 해당한다" 고 호미곶 모양을 묘사했다. 따라서 국립지리원에서 지명위원회를 열어 호미곶을 새 이름으로 결정함에 따라 예전 지도의 장기곶은 호미곶으로 바뀌어 지도에 실리게 되었다. 영일만의 끝이자 국토의 동쪽 끝에 위치한 호미곶은 "상생의 손" 으로 유명한 해맞이광장이 들어서 "한민족 해맞이축전"이 열리며 초대형 풍력발전기, 등대박물관등이 있어 전국적인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